올리브오일과 미식의 기록 · Notes on olive oil & taste
스토리/푸드
한국의 나물·숙채 요리에 참기름 대신 올리브오일을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어떤 나물에 잘 어울리는지, 언제 넣어야 풍미가 살아나는지 구체적인 기준을 정리했다.

한국 밥상에서 참기름이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이다. 시금치 무침, 도라지 나물, 콩나물 숙채까지 — 마지막에 몇 방울 떨어트리는 것만으로 향이 완성된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가정 요리와 외식 현장 모두에서 올리브오일을 한국 요리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눈에 띄게 늘었다.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소비 트렌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수입량은 2018년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 중 가정용 비중이 업소용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흐름이 단순한 유행인지, 실제로 나물 요리와 궁합이 맞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올리브오일이 참기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단정도 모두 성급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나물에', '언제', '얼마나' 쓰느냐는 기준이다.
두 오일의 차이는 향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참기름은 볶은 참깨의 강렬하고 고소한 향이 지배적이며, 소량으로도 요리 전체의 인상을 바꾼다. 발연점은 약 160°C 내외로 낮은 편이라, 실제로는 가열 후 마지막 단계에 넣어 향을 살리는 용도로 쓰인다.
반면 고품질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EVOO)은 풀·아몬드·사과 같은 신선하고 다층적인 풍미를 지닌다. 특유의 쓴맛과 매운 끝맛(피칸시)은 올레오칸탈 같은 폴리페놀 성분에서 비롯된다고 알려져 있다. 스페인 고등연구위원회(CSIC)의 연구에 따르면 올레오칸탈 함량이 높을수록 이 특유의 매운 끝맛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향의 강도는 올리브오일이 참기름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 이는 단점이기도, 장점이기도 하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고 싶은 나물 요리에서는 오히려 올리브오일의 '조용한 풍미'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물을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생각하면 기준이 잡힌다.
첫째, 담백한 풀 향의 채소. 시금치, 아욱, 취나물, 미나리, 애호박 볶음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계열은 재료 자체의 채소 향이 주인공이라 참기름의 강한 고소함이 오히려 재료를 덮을 수 있다. 올리브오일을 쓰면 채소의 풋내와 단맛이 더 또렷하게 살아난다. 특히 아욱된장국 대신 아욱을 살짝 데쳐 올리브오일·소금·마늘로만 무치는 시도는 이탈리아 남부 채소 요리인 '리볼리타'의 방식과 사실상 맞닿아 있다.
둘째, 강한 향의 산나물. 두릅, 고사리, 참나물, 냉이처럼 향이 개성 있는 나물은 올리브오일의 쓴맛과 충돌할 수 있다. 이 계열에는 참기름을 적극 유지하거나, 올리브오일을 썼다면 간장·된장 같은 발효 장류를 함께 써서 전체적인 균형을 잡는 것이 좋다. 두 오일을 1:1로 섞어 쓰는 방식도 나쁘지 않다.
셋째, 숙채(익힌 나물). 콩나물, 숙주, 고구마줄기, 가지 무침이 여기에 해당한다. 가열 과정에서 수분이 많이 빠져나오므로, 오일의 양이 과하면 질척해진다. 올리브오일은 참기름보다 점도가 낮고 퍼짐이 빠르기 때문에, 참기름 사용량의 70~80% 수준에서 시작해 조금씩 조절하는 방식을 권한다.
올리브오일의 향은 열에 민감하다. 조리 중 볶음 단계에서 넣으면 풍미 성분이 일부 날아가지만, 채소가 잘 코팅되어 수분 손실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반면 조리 후 무치는 단계에서 넣으면 올리브오일 본연의 향과 폴리페놀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
나물 무침에서 가장 좋은 방식은 볶거나 데치는 조리는 물이나 최소한의 포도씨유로 마치고, 간을 맞춘 뒤 마지막에 올리브오일을 둘러 버무리는 것이다. 이는 지중해 요리에서 올리브오일을 '마무리 오일(finishing oil)'로 쓰는 전통과 정확히 같은 논리다. 열을 거치지 않을수록 폴리페놀이 온전하게 유지된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탈리아 국립연구위원회(CNR)의 자료에 따르면 가열 온도와 시간이 올레오칸탈 등 생리활성 성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나물 요리에는 풍미가 지나치게 강하지 않은 미디엄 인텐시티 EVOO가 어울린다. 쓴맛과 매운맛이 강한 얼리 하베스트 계열은 취나물이나 시금치처럼 향이 약한 채소를 압도할 수 있다. 반대로 버터·아몬드 계열의 부드러운 스타일은 한국 나물의 간장·참깨 기반 소스와 잘 어우러진다.
품종으로 보면, 오히블랑카처럼 산도가 낮고(예: 0.16% 수준) 폴리페놀이 600 mg/kg 이상인 제품은 풍미가 비교적 균형 잡혀 있어 한국 채소 요리에 응용하기 좋다는 평이 있다. 시바리타 계열 역시 산도가 낮고 풍미가 온화한 편이라 시도해볼 만하다. 다만 어떤 오일이든 개봉 후 빛과 공기를 차단해 보관해야 향이 유지된다.
시금치 200g을 끓는 소금물에 1분간 데친 뒤 찬물에 헹궈 물기를 꼭 짠다. 다진 마늘 1/2작은술, 국간장 1작은술, 소금 약간으로 간을 맞추고, 마지막에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1작은술(약 5ml)을 둘러 가볍게 버무린다. 참기름을 전혀 쓰지 않아도 올리브오일의 풀 향이 시금치의 단맛을 잘 받쳐준다. 취향에 따라 통깨를 뿌리면 고소함을 보완할 수 있다.
고사리나 도라지처럼 향이 강한 나물에 도전하고 싶다면, 올리브오일과 참기름을 2:1 비율로 섞어 쓰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본다. 두 오일의 향이 서로를 보완하면서 낯설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준다.
한식의 기준에서 올리브오일은 아직 '이방인'이지만, 정해진 규칙을 따르기보다 재료와의 궁합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충분히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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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EA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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