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오일과 미식의 기록 · Notes on olive oil & taste
메이킹/공정
올리브오일 품질을 판단할 때 산도(FFA)만 보는 시대는 지났다. 헥사날, K232·K270 흡광도, 과산화물가(PV)까지 각 지표가 측정하는 산패의 '단계'가 다르다. 세 수치의 원리와 한계를 함께 살펴야 진짜 품질이 보인다.

올리브오일 라벨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수치는 '산도(acidity)'다. 정식 명칭은 유리지방산 함량(Free Fatty Acids, FFA)으로, 올리브 열매가 수확·착유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미생물 활동으로 트리글리세라이드가 분해될 때 올라간다. 엑스트라버진 등급의 국제 기준은 0.8% 이하이며, 낮을수록 신선한 착유 조건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산도는 '이미 일어난 손상'의 흔적이다. 올리브오일이 병에 담긴 뒤 빛·열·산소에 노출되면서 지질이 산화되는 과정, 즉 소비자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산패는 FFA 수치에 즉각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 산도가 낮더라도 보관 상태가 나빴다면 오일은 이미 산화 연쇄 반응의 한가운데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국제올리브오일협회(IOC)와 EU 규정은 산도 외에도 과산화물가(PV), 자외선 흡광도(K232·K270), 그리고 관능평가를 병행해 등급을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질 산화는 단번에 완료되는 반응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가장 먼저 생기는 것이 과산화물(hydroperoxide)이다. 과산화물가(Peroxide Value, PV)는 이 1차 산화물의 농도를 meq O₂/kg 단위로 측정한다. IOC 기준에 따르면 엑스트라버진은 20 meq O₂/kg 이하여야 한다.
하지만 과산화물 자체는 불안정하다. 열이나 시간에 의해 빠르게 분해되면서 알데하이드·케톤 같은 2차 산화물로 전환된다. 이때 활용하는 지표가 자외선 흡광도다. K232는 1차 산화물(컨쥬게이티드 다이엔)을, K270은 2차 산화물(컨쥬게이티드 트라이엔·알데하이드류)을 감지한다. EU 규정(EC 2568/91 및 개정안)에 따르면 엑스트라버진 기준은 K232 ≤ 2.50, K270 ≤ 0.22다. K232가 높으면 산화가 막 시작된 상태, K270이 높으면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두 수치를 함께 보면 산화가 '얼마나 오래됐는지'까지 추정할 수 있다. PV는 높은데 K270이 낮다면 산화 초기, 반대로 PV가 낮아도 K270이 높다면 1차 산화물이 이미 분해된 뒤라는 신호다. 정제유 혼입을 탐지하는 데도 K270이 쓰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최근 올리브오일 품질 연구에서 주목받는 지표가 헥사날(hexanal)이다. 헥사날은 리놀레산(ω-6 지방산)이 산화될 때 생성되는 6탄소 알데하이드로, '오래된 기름 냄새' 혹은 '마분지 냄새'의 주원인 물질로 알려져 있다. 분자량이 작아 휘발성이 높고, 기체크로마토그래피(GC) 또는 GC-MS로 ppm·ppb 단위까지 정밀 측정이 가능하다.
2022년 《Food Chemistry》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헥사날 농도는 관능평가에서 훈련된 패널이 '산패'로 판정하기 전 단계부터 유의미하게 상승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즉, 사람의 코보다 먼저 산화를 감지할 수 있는 지표라는 점에서 조기 경보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PV나 K값이 정상 범위에 있더라도 헥사날이 이미 높게 나타나는 사례가 보고돼, 기존 지표의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다는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현재 헥사날은 IOC나 EU의 공식 규격 항목은 아니다. 다만 스페인 AICA(농업식품정보센터), 이탈리아 CNR 식품화학연구소 등에서 신선도 조기 탐지 도구로 연구가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프리미엄 생산자들이 자체 품질 관리 지표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 지표가 포착하는 산패의 '시간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산도(FFA)는 착유 이전의 원료 품질과 가공 위생을 반영한다. 과산화물가(PV)는 산화가 막 시작된 초기 단계를 포착한다. K232는 1차 산화 연쇄가 활발히 진행 중임을 나타내고, K270은 산화가 2차 단계로 넘어갔음을 가리킨다. 헥사날은 실제 향미 열화와 직결된 2차 산화물의 축적을 미세 단위로 추적한다.
이 네 수치가 모두 낮다면 오일이 전 주기에 걸쳐 잘 관리됐다는 증거다. 반면 산도가 낮아도 K270과 헥사날이 높다면, 착유 품질은 우수했지만 유통·보관 과정에서 산화가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 입장에서 라벨에 모든 수치가 표기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생산자 또는 수입사에 COA(Certificate of Analysis, 성분분석 성적서)를 요청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면 좋다.
지표를 이해했다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보관하느냐'로 이어진다. 헥사날과 K270은 빛과 열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유럽식품안전청(EFSA) 자료에 따르면, 올리브오일을 투명 유리병에 담아 직사광선에 노출할 경우 단 며칠 만에 과산화물가가 기준치에 근접하는 속도로 상승할 수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어두운 유리병 또는 틴 용기, 서늘하고 빛이 차단된 환경(14~18°C 권장)이 이상적이다. 개봉 후에는 뚜껑을 꼭 닫아 공기 접촉을 최소화하고, 가능하면 30~45일 이내에 사용하는 것이 향미 손실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아무리 낮은 산도와 좋은 K값으로 출발한 오일도 보관 환경이 나쁘면 헥사날 수치가 먼저 경고를 보낸다.
품질 수치는 생산자의 성실함을 읽는 언어이고, 보관 방식은 소비자가 그 품질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지키는 방법이다. 산도 하나로는 그 이야기의 절반도 담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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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EA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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