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오일과 미식의 기록 · Notes on olive oil & taste
메이킹/공정
올리브오일이 '엑스트라버진' 등급을 받으려면 화학 수치뿐 아니라 국제올리브협회(IOC) 공인 패널의 관능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결함 하나가 등급 전체를 바꾸는 감각 평가의 구조와 판정 기준을 깊이 들여다본다.

'산도 0.2% 이하, 과산화물가 20 meq/kg 이하.' 올리브오일 라벨이나 제품 설명에서 흔히 접하는 수치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화학 기준을 통과한 오일이 엑스트라버진(Extra Virgin Olive Oil, EVOO) 등급을 받지 못하는 일이 실제로 발생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국제올리브협회(IOC)가 규정한 등급 체계에서 화학 분석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IOC의 올리브오일 무역 규격(IOC/T.15/NC No.3/Rev.14)에 따르면 엑스트라버진 등급으로 인정받으려면 공인된 감각 평가 패널이 평가한 결함 점수(Median of Defects, Md)가 0이어야 하며, 긍정 속성인 과일향(Fruitiness)의 중앙값(Mf)은 0을 초과해야 한다. 화학 수치가 아무리 깨끗해도 이 두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버진(Virgin) 또는 그 이하 등급으로 강등된다. 올리브오일 한 병의 등급이 사람의 코와 혀에 의해 결정되는 셈이다.
감각 평가는 흔히 '테이스팅'으로 불리지만, IOC가 규정한 방법론은 훨씬 엄격하다. 최소 8명, 통상 8~12명으로 구성된 공인 패널(Panel)이 표준화된 암갈색 유리잔에 시료를 담아 검사한다. 잔은 40°C로 데워져 있어 향기 성분의 휘발을 촉진한다. 패널 리더는 평가자들이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지 못하도록 개별 부스에서 독립 평가를 진행하도록 지시한다.
평가자는 냄새를 맡고, 입에 머금어 혀 전체에 고루 퍼뜨린 뒤, 목 뒤쪽으로 넘기며 후비강 향(retronasal aroma)까지 확인한다. 각 속성의 강도는 0~10 구간의 비구조적 척도(unstructured scale)에 표시된다. 이후 패널 리더가 각 속성의 중앙값을 통계적으로 산출해 등급 판정에 사용한다. IOC 자료에 따르면 패널은 연 1회 이상 표준 시료로 교정(calibration)을 받아야 공인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결함은 크게 세 가지 경로에서 발생한다. 원료 올리브의 상태, 가공·착유 과정, 보관 조건이 그것이다. IOC 공식 어휘집에 정의된 주요 결함 항목은 다음과 같다.
란시드(Rancid): 산화가 진행된 오일에서 나타나는 역한 기름 냄새. 빛·열·공기에 장기간 노출된 오일에서 가장 흔히 감지되며, 소비자 불만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보고된 바 있다.
무시(Musty/Humid): 올리브를 착유 전 고온다습한 환경에 쌓아두면 곰팡이·효모가 번식하면서 나타나는 곰팡이 냄새. 중앙값이 2.5를 넘으면 버진 등급조차 부여받지 못하는 '올리브오일로서 부적합'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와이니-비니거리(Winey-Vinegary): 올리브 과육이 혐기성 발효를 거치면서 생성되는 식초·와인 냄새. 과도한 압착 압력이나 부적절한 세척 상태의 착유기에서 유발되는 경우가 많다.
프로스티(Frostbitten Olives): 동해를 입은 올리브를 착유했을 때 나타나는 수분기 많은 풀 냄새와 이질적 단맛의 혼합.
메탈릭(Metallic): 금속 이온이 오일에 용출될 때 나타나는 쇠 냄새. 철제 착유 장비의 부식이나 불량 보관 용기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 외에도 에스파르토(esparto) 풀이나 절인 올리브 냄새 등 10여 가지 결함이 IOC 어휘집에 등재되어 있다. 판정 기준의 핵심은 '중앙값(Median)'이라는 점이다. 평균이 아닌 중앙값을 쓰는 이유는 극단적 평가자 한두 명의 영향을 배제해 패널 전체의 합의된 인식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결함이 없다고 해서 자동으로 엑스트라버진이 되지는 않는다. 과일향(Fruitiness)의 중앙값이 0을 초과해야 한다는 조건이 별도로 존재한다. 과일향은 신선한 올리브 자체의 향으로, 녹색 과일향(green fruitiness)과 숙성 과일향(ripe fruitiness)으로 세분된다.
IOC 규격은 쓴맛(Bitterness)과 매운맛(Pungency)을 긍정 속성으로 분류한다. 두 속성 모두 폴리페놀 화합물, 특히 올레오칸탈(oleocanthal)과 올레아세인(oleacein)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식품안전청(EFSA) 자료에 따르면 올리브오일 내 폴리페놀은 하루 20g 섭취 시 혈중 LDL 콜레스테롤의 산화적 손상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단, 이는 의학적 효능의 단정이 아닌 인증된 건강 강조 문구(health claim)의 범주임을 유의해야 한다.
쓴맛이 강하다고 해서 결함이 아니다. 오히려 조기 수확, 신선한 착유를 상징하는 지표로 평가받는다. 소비자들이 '너무 쓰다'고 느끼는 오일이 패널 테스트에서 최고점을 받는 역설적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각 평가 결과에 따라 등급은 세 단계로 갈린다. 결함 중앙값이 0이고 과일향이 존재하면 엑스트라버진, 결함 중앙값이 0 초과~3.5 이하이면 버진(Virgin), 3.5를 초과하면 올리브오일로서 직접 식용이 불가능한 램판테(Lampante Virgin Olive Oil)로 분류된다. 램판테는 정제(refining) 공정을 거친 뒤 버진 오일과 블렌딩해야만 '올리브오일(Olive Oil)' 또는 '올리브 퍼미스 오일(Olive Pomace Oil)' 등급으로 유통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UC Davis) 올리브센터가 2010년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내 유통 중인 수입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 샘플의 상당수가 IOC 또는 USDA 감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원인으로는 란시드 결함과 부적절한 보관에 따른 산패가 지목되었다. 이는 라벨 등급이 실제 품질을 항상 보증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공인 패널이 아니더라도 소비자가 일상에서 품질을 가늠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우선 손바닥에 소량을 따라 체온으로 살짝 데운 뒤 코를 가까이 댄다. 신선한 풀·사과·아티초크·토마토 잎 등 녹색 계열의 향이 올라오면 긍정 신호다. 반대로 크레용·오래된 식용유·식초 냄새가 감지된다면 각각 산화, 무시, 와이니 결함을 의심할 수 있다.
입에 머금었을 때 혀 뒷부분에서 느껴지는 쓴맛과 목을 타고 내려갈 때의 후추 같은 매운 자극감은 폴리페놀이 풍부하다는 신호로 알려져 있다. 이 두 가지 감각이 전혀 없이 밋밋하다면 오일이 이미 산화되었거나 처음부터 저등급 오일이 혼합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물론 이는 공인 검사를 대체하지 않으며, 정확한 등급 판정은 반드시 공인 패널 또는 공인 분석 기관의 검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같은 '엑스트라버진' 라벨이라도 EU, IOC, 미국, 호주의 등급 기준은 미묘하게 갈린다. 산도·폴리페놀·감각 평가 항목별로 각국 규정이 어떻게 다른지, 소비자가 꼭 알아야 할 핵심만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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