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오일과 미식의 기록 · Notes on olive oil & taste
가이드
2015년과 2024년,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 시장은 두 번의 극적인 가격 사이클을 경험했다. 기상이변과 수급 충격, 투기적 매수가 어떻게 얽혀 가격을 움직이는지, 그 구조를 들여다본다.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EVOO)의 국제 가격은 여느 식용유보다 변동폭이 크다.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스페인 한 나라에서 나오고, 올리브나무는 기후에 극도로 민감한 격년 결실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국제올리브오일협회(IOC)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올리브오일 생산량의 약 40~45%를 스페인이 담당하고 있으며, 그다음으로 이탈리아, 그리스, 튀니지 순이다. 이 집중도는 한 지역의 작황이 곧 전 세계 가격으로 직결됨을 의미한다.
가격 사이클은 대체로 '풍작 → 재고 누적 → 가격 하락 → 수요 자극 → 재고 소진 → 가격 회복'이라는 패턴을 따른다. 그런데 2015년과 2024년은 이 교과서적 흐름이 기후 충격과 투기적 시장 심리로 인해 훨씬 격렬하게 증폭된 사례로 기록된다.

2014~2015 시즌은 스페인 올리브오일 역사상 손꼽히는 대풍년이었다. IOC 생산통계에 따르면 해당 시즌 스페인의 올리브오일 생산량은 약 170만 톤에 달해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탈리아가 같은 시기 병해충(올리브나무빠름시듦병, Xylella fastidiosa)과 악천후로 생산이 급감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스페인산 벌크 EVOO의 스페인 내 기준가는 2014년 초 kg당 약 3.5유로 수준에서 2015년 초에는 2유로 이하로 떨어졌다. 코카EVOO시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대형 유통업체들은 저가 매입을 공격적으로 늘렸고, 시장에는 저품질 블렌딩 제품이 범람했다. 가격 경쟁은 생산자의 수익성을 훼손했고, 품질보다 원가 절감을 선택하는 생산자가 늘어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소비 측면에서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저렴한 EVOO를 접한 유럽 외 소비자들이 올리브오일 식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장기적으로 미국·일본·호주 등 비전통 시장의 수요 기반이 형성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국제식품농업기구(FAO)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이후 3년간 EVOO의 비유럽 수출량은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인 바 있다.
2024년의 가격 흐름은 2015년과 정반대 방향에서 시작됐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2022~2023년 연속된 가뭄과 이상 고온으로 심각한 생산 감소를 겪었다. 스페인 농업부 자료에 따르면 2022~2023 시즌 스페인 올리브오일 생산량은 약 66만 톤으로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축소됐다.
이 공급 충격은 가격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2024년 초 스페인 내 벌크 EVOO 기준가는 kg당 9유로를 상회하는 수준까지 치솟았다고 올리브오일타임스(Olive Oil Times)가 보도한 바 있다. 이는 10년 전 가격의 4배를 넘는 수치다.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올리브오일이 도난 방지 잠금장치 안에 놓이는 장면이 유럽 언론에 등장했고, 일부 식당들은 메뉴에서 올리브오일을 선택 항목으로 돌리거나 다른 식용유로 대체하는 사례도 보고됐다.
그러나 2024년 하반기부터 가격은 빠르게 안정세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2023~2024 시즌 안달루시아에 가을비가 충분히 내리면서 회복세가 확인됐고, 튀니지와 모로코의 생산량도 예상보다 양호했다. IOC 중간 생산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4~2025 시즌 전 세계 올리브오일 생산량은 전 시즌 대비 유의미하게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 바 있다. 시장은 선물 포지션을 빠르게 축소하며 조정에 나섰다.

2015년과 2024년 두 사이클에서 반복되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
첫째, 기후가 트리거다. 올리브나무는 꽃이 피는 봄철과 과실이 자라는 여름철 온도와 강수량에 극도로 민감하다. 격년 결실 특성(alternate bearing)에 기후 이상이 더해지면 공급 예측 오차가 커진다.
둘째, 투기적 매수·매도가 진폭을 키운다. 선물시장이 발달한 식용유 시장에서는 실제 공급 변화보다 심리적 기대가 먼저 움직인다. 2024년 가격 폭등 시기에도 헤지펀드의 매수세가 가격 상단을 끌어올린 요인으로 지목됐다.
셋째, 소비 대체가 생각보다 느리다. 올리브오일을 생활 속 필수품으로 여기는 지중해 소비자들은 가격이 올라도 쉽게 이탈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면 북유럽이나 동아시아 신규 시장의 소비자들은 가격 민감도가 높아 고가 국면에서 이탈이 뚜렷하다. 이런 수요 구조 차이가 가격 조정 속도를 결정한다.
가격 사이클을 이해하면 EVOO를 구매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가격 하락기는 품질 좋은 제품을 합리적으로 확보할 기회일 수 있지만, 동시에 저품질 블렌딩 제품이 시장에 넘치는 시기이기도 하다. 산도(acidity)와 폴리페놀 수치 같은 품질 지표를 확인하는 습관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다.
폴리페놀은 올리브오일의 항산화 특성과 연관된 성분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럽식품안전청(EFSA) 자료에 따르면 폴리페놀 함량이 높은 올리브오일이 지질 산화 방어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단, 이는 일정 수준 이상의 함량일 때의 관찰 결과이며, 모든 개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가격이 높다고 품질이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고, 가격이 낮다고 품질이 나쁜 것도 아니다. 수확 연도(harvest date), 산도, 폴리페놀,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인증 — 이 세 가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가격 사이클의 노이즈를 걷어내는 가장 실용적인 접근이다.
기후 변화가 지속되는 한 올리브오일 가격의 변동성은 구조적으로 높은 상태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기상기구(WMO) 보고서에 따르면 지중해 지역은 전 세계 평균보다 빠른 속도로 기온이 상승하고 강수량이 감소하는 경향이 관측되고 있다. 이는 올리브 재배의 난이도를 높이고, 모로코·포르투갈·칠레 같은 신흥 생산국의 비중이 장기적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유전자 다양성이 높은 품종 보존과 물 효율 농법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으며, 일부 생산자들은 기후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여러 품종을 혼합 재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가격 사이클은 반복되겠지만, 그 속에서 품질과 투명성을 유지하는 생산자와 그렇지 않은 생산자의 간극도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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