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오일과 미식의 기록 · Notes on olive oil & taste
스토리/푸드
버터와 라드의 땅으로 불리던 스칸디나비아에서 올리브오일의 존재감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노르딕 셰프들이 올리브오일을 재해석하는 방식과 가정 식탁에서의 활용 흐름을 깊이 들여다본다.

스칸디나비아는 오랫동안 버터, 라드, 순록 지방이 주방을 지배해 온 땅이다. 혹독한 겨울과 짧은 일조량 속에서 기름진 동물성 지방은 열량을 채우는 가장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코펜하겐, 스톡홀름, 헬싱키의 레스토랑 키친에서는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EVOO)이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흐름은 점차 가정 식탁으로도 번지고 있다.
유럽 식품 시장 조사기관 프로마르(Promar International)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3년 사이 북유럽 4개국(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의 올리브오일 수입량은 약 34% 증가했으며, 그 중 엑스트라버진 등급 비중이 전체의 60%를 넘어섰다. 단순한 건강 유행에 그치지 않고, 품질에 대한 인식이 성숙해지고 있다는 신호다.
북유럽 요리의 새로운 물결을 이끈 것은 2000년대 초 코펜하겐에서 시작된 '뉴 노르딕 퀴진(New Nordic Cuisine)' 운동이다. 2004년 노르딕 셰프들이 발표한 '뉴 노르딕 매니페스토'는 지역 식재료와 계절성을 최우선으로 삼지만, 동시에 다른 문화의 좋은 재료를 적극 수용한다는 개방적 철학을 담고 있다.
이 맥락에서 올리브오일은 '외래 침입자'가 아니라 '품질의 동반자'로 받아들여졌다. 덴마크의 미슐랭 스타 셰프들은 발효 버터와 EVOO를 나란히 사용하며 각각의 개성을 살린다. 예를 들어, 스모크드 연어에 딜(dill)을 곁들인 뒤 풀향이 강한 엑스트라버진을 몇 방울 올리면, 지방의 깊이와 허브의 청량함이 동시에 살아난다. 버터가 주는 크리미한 무게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맛이다.

북유럽 요리는 짠맛(소금에 절인 생선, 발효 식품), 산미(피클, 사워도우), 쓴맛(야생 채소, 라이보리)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올리브오일은 이 복잡한 풍미 지형 안에서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는 '완충제'다. 발효 식품 특유의 강한 산미와 짠맛을 올리브오일의 부드러운 지방산이 감싸 안으며, 전체적인 맛의 균형을 잡아준다. 청어 절임(sill/sild)에 엑스트라버진을 살짝 두르면 짠맛이 날카롭게 튀지 않고 라운드하게 마무리된다.
둘째는 '향의 앰프'다. 올리브오일은 지용성 향기 화합물을 용해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스칸디나비아에서 자주 쓰이는 딜, 처빌, 라벤더, 소나무 새순 같은 허브의 에센셜 오일 성분이 EVOO와 결합하면 코와 혀에서 훨씬 선명하게 감지된다. 이 원리를 활용해 일부 노르딕 셰프들은 '허브 인퓨즈드 올리브오일'을 직접 제조해 피니싱 오일로 사용하기도 한다.
루트채소 구이에도 올리브오일은 유용하다. 스웨덴식 루타바가(순무의 일종) 퓌레나 핀란드식 순무 캐서롤에 고소한 향의 EVOO를 마무리 단계에 넣으면, 전분질 채소의 단맛이 더 두드러지면서 풍미가 입체적으로 완성된다.
북유럽 가정에서 올리브오일은 초기에는 주로 샐러드드레싱 용도로 유입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쓰임새가 넓어지고 있다. 스웨덴 소비자 조사기관 HUI Research의 2022년 가계 식품 소비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리브오일을 '가열 조리에도 사용한다'고 응답한 스웨덴 가정의 비율이 2017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빵에 직접 찍어 먹는 문화도 자리잡고 있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베이커리 카페에서는 사워도우 한 조각과 함께 엑스트라버진 한 잔을 내주는 '오일 디핑' 메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지중해 남부의 식습관이 북쪽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올리브오일은 품종과 산지에 따라 향미가 크게 달라진다. 노르딕 요리와의 궁합을 고려할 때 몇 가지 기준이 도움이 된다.
풀향과 쓴맛이 강한 품종은 야생 채소 요리나 스모크 풍미가 강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반면 버터리하고 부드러운 향을 가진 품종은 생선 요리나 루트채소 퓌레처럼 섬세한 음식에 맞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산 피쿠알(Picual) 품종은 강렬한 폴리페놀 함량과 풋사과·토마토잎 향으로 훈제 식재료와 대조적인 신선함을 더한다. 반면 오히블랑카(Hojiblanca) 계열은 아몬드향과 사과향이 은은하게 감돌아 스칸디나비아식 달콤한 루트채소 요리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한 가지 실용적인 팁: 노르딕 요리 특유의 발효·훈제 향이 강한 식재료를 다룰 때는, 가열 전 올리브오일을 두르기보다 조리 후 피니싱 단계에 사용하는 것이 향의 충돌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게 현지 셰프들의 일반적인 조언이다.
노르딕 식문화와 올리브오일 문화가 교차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지속 가능성'이다. 뉴 노르딕 퀴진은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는 식재료 선택을 핵심 원칙으로 삼는다. 전통적인 올리브 재배 방식, 특히 스페인 안달루시아나 이탈리아 남부의 수령 수백 년 된 올리브 나무에서 수확한 오일은 탄소 격리 능력과 생태계 보전 기여도가 높다는 점에서 이 원칙과 맞닿아 있다.
유럽올리브오일생산자협회(ASOLIVE) 자료에 따르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재배된 올리브 과수원은 동일 면적 기준 옥수수밭 대비 탄소 흡수량이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북유럽의 일부 레스토랑들은 산지 직거래 올리브오일을 '스토리가 있는 재료'로 메뉴에 명시하며, 단순한 조미료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버터의 왕국이 올리브오일을 품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품질·철학·지속 가능성이라는 복수의 가치가 맞물린 결과다. 스칸디나비아 식탁에서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이 자리를 넓혀가는 이 흐름은, 올리브오일이 지중해를 훌쩍 넘어 보편적인 미식의 언어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증거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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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EA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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